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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실미도> 정보 줄거리 숨겨진 사건의 진실

by 프로세스마스터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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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 32년을 숨겨온 진실

기본 정보

 

영화 실미도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북한 침투를 위해 훈련된 특수부대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1999년 개봉하여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실미도는 관광지로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강우석

출연: 안성기, 설경구, 허준호, 정재영

개봉일: 2003년 12월 24일

 

영화 줄거리

 

실미도(강우석 감독)는 1960년대 한국에서 진행된 비밀 군사작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액션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북한 지도자 김일성 암살이라는 일급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징집되고 엄격한 훈련을 받은 사형수 그룹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서로 다른 훈련생들 사이의 역동성을 탐구하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투쟁과 그들이 겪는 강도 높은 훈련을 소개하고, 역경의 도가니 속에서 형성된 유대감이 중심 주제가 되어 중대한 임무에 감정적 깊이를 더해줍니다. 줄거리는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등장인물들이 군인이자 사형수로서의 역할과 씨름하면서 직면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합니다.

 

실미도는 액션, 드라마, 서스펜스 요소를 능숙하게 엮어 긴장감 넘치고 감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는 스릴 넘치는 영화적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결정의 이중성으로 희생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비극을 고발합니다.

 

숨겨진 사건의 진실

 

  • 1971년 8월 23일 발생한 일명 실미도 사건의 전말

1971 8 23, 육군 모 부대 통신실에 인천 독배부리 해안초소로부터 긴급한 무전이 타전됩니다. 초소 앞에 군복 차림의 무장한 괴한 21명이 나타나 조개고개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무전이었습니다.

경찰은 옥련동에 방어막을 쳤고, 여기서 송도에서 시내버스를 탈취한 괴한들과 1차 교전이 벌어집니다. 무장한 괴한들은 총격으로 타이어가 펑크난 버스를 버리고 또 다른 버스를 탈취해서 방어막을 뚫고 달아납니다.

곧이어 이들을 저지하라는 제보가 서울 노량진경찰서 기동타격대에 타전됩니다. '간첩이 인천해안으로 침투해서 민간인 버스를 탈취해서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으니 이들을 저지하라'는 지령이었습니다.

괴한들이 탄 버스는 서울 대방동에 방어막을 친 기동타격대의 사격을 받고 유한양행 앞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섰습니다.

괴한들의 목숨을 건 질주의 마지막은 참혹했습니다. 교전 중 버스 안에서 수류탄이 터져, 결국 경찰 4명과 괴한 14명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 대낮에 군복 차림의 총격전을 벌인 괴한들은 누구였을까?

오후 3시 10분 대간첩대책본부는 무장한 무장공비 23명이 잠입했으나, 우리 군에 의해 일망타진됐다고 발표합니다. 이들 무장공비들의 목표는 청와대 전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신민단 신세규의원에게 심상치 않은 익명의 공군장교의 제보가 들어옵니다. 그들은 무장공비가 아니고, 특수부대 요원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 뒤 국방부 장관은 '무장공비'에서 '군 특수범'이라고 발표내용을 수정하여 발표합니다.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4명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그렇게 묻혀버리는 듯 했습니다.

시실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곳은 인천의 작은 섬 실미도 군사훈련장이었습니다.

이곳의 훈련병들이 난동을 부리고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이곳을 달출했던 것이었습니다.

  • 사건의 배경이 된 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앞끼지 침투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후일 1.21 사태로 불려지는 데, 이들의 목표가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것이라는 것이 당시 생포된 무장간첩 김신조에 의해  밝혀져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해 3월, 1.21 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한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창설되고, 북한의 124군 부대를 능가할 수 있도록  실미도에서 훈련이 시작됩니다. 이들의 목표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 주석을 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미도 훈련에서는 무장공비 연습과 함께 사람을 죽이는 훈련이 강도높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북파 명령은 끝내 내려지지 않았고, 이들은 지옥같은 섬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갈등을 겪습니다.

  • 북파 작전은 왜 취소되었나

실미도 부대의 훈련과정은 199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됩니다.  

1.21 사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한미공조 대북 공작 작전을 제의했으나,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을 겪는 과정에서 상당한 반전여론에 부딪혀야만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대규모 군사충돌이 일어나고 이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미국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반대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UN의 통제를 받지 않고 단독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비정규군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창설된 부대가 바로 실미도 684부대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실미도 부대는 애초부터 북파될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부대였습니다. 그러나 실미도 부대는 해체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 실미도 부대는 왜 해체되지 않았나

당시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선거가 끝나고 10월까지는 부대가 해체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8월에 사건이 먼저 터진 것입니다.

실미도 사건 발생 3일만에 국방부장관과 공군 참모총장이 해임되었고, 부대장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실미도 부대원들은 정부의 강압으로 모두 입을 닫게 됩니다. 

  • 실미도 부대에 파견된 그들은 누구였을까

영화에서 실미도 부대원들은 사형수, 무기수들로 구성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실미도 부대장의 증언에 따르면, 실미도 부대 지원자들은 신문팔이, 구두닦이, 넝마주이, 암표장사 등 가난한 환경에 놓였던 청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중학교만 겨우 마치거나,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북파되었다가 복귀하면 평생을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북파 공작원을 비밀리에  모았던 것입니다.

  • 사건의 결과

훈련생 31명 중 7명이 훈련기간 중에 사망했고, 20명은 실미도 사건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생존자 4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71년 3월 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법당국이 사형을 받은 이들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망한 부대원들 22명의 유해도 벽제리 묘지에 가매장됐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30년이 넘도록 관리하지 않은 묘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후일 비로소 숨겨진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유가족들은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들과 형제가 사형수, 범법자, 흉악범으로 묘사된 것에도 항의했습니다. 유가족들은 국방부에 진실규명을 요구했지만, 유골을 찾아낼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실미도는 남북한이 극도로 대립하던 시대, 국가에 의해 감금돼 인권을 유린당하고 끝내 죽음으로 내몰렸던 청년들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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